3.1 운동의 진실

Ideas 2007. 2. 5. 15:40

3.1 운동이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종로 파고다 공원에서 장렬히 만세를 외치는 3.1운동을 떠올릴 것이다.

그리고 기미독립선언문을 읊었을 민족대표 33인을 생각 될 터인데..



그들이 독립선언문을 외친곳은? 음식점 태화관이다. 태화관은? 명월관의 별관이다.

명월관은? 기생이 나오기로 유명한 궁중요리 전문점이였다.

이곳의 손님은 '대표적 매국노 이완용'과 '천도교의 제 3대 교주 손병희'가 있다.

(분명히 말했지만 이곳은 '요정'이다. 기녀들이 있는 곳인데 종교계 인사가?)


민족 대표 33인은 대체 왜 민중들이 모인 파고다 공원에서 외치지 않고 음식점에서 자기들끼리(?)

낭독한걸까?


우선 3.1운동이 일어나게 된 배경을 간략히 설명하자면 1차 세계대전 후 미국의 윌슨 대통령의

민족 자결 주의의 영향(그런데 이 민족 자결주의는 패전국 독일의 식민지에 관해 얘기 했을뿐

승전국인 일본의 식민지에 대해서는 해당 사항이 없던 것이다.)으로 만주에서 일어난 무오 독립

선언과 도쿄 유학생들이 외친 2.8 독립선언 이였다. (가까운 국외 두군데서 외쳤는데 다음차례는

국내 아니겠는가?) 시기도 참 기구하게 고종이 죽게 되고(독살?) 3.3일에 고종의 관이 나오기로

결정 되었다. 못난 왕이지만 고종.. 그 인생 얼마나 불쌍한가-_-; 미우나 고우나 부모님이듯 고종도

한 나라 왕(당시는 황제)인데.. 사람들 애도하기 위해 모인다. 시기적으로 사건 하나 일어나기 딱 이다.


이 국내 독립선언을 전개 해 나간 사람 중 하나인 천도교 제 3대 교주 손병희.

천도교만 외칠려니 특정 종교 집단만의 선언 같은지라 기독교와 불교도 같이.. 원래 외치려고

준비중이던 학생들과 연합하여 외치기로 한다. 선언서에 이름 찍을 민족 대표 33인을 정하고

파고다 공원에서 3.1일에 보기로 한것. (국장 당일은 좀 그렇고 경비도 강화 될 것 같아 3.2일로

하자니 기독교에서 그날이 안식일이라 어째 싫고.. 그래서 결정된 날이 3.1)


3.1일 당일, 민족 대표 33인이 파고다 공원에 왔는데 군중이 너무 많아 놀래서 허겁지겁

태화관으로 가서 일단 먹고 얘기하자는 양으로 그 자리에서 식사도 하고 낭독도 했다는

얘기도 있고..(자장면 먹고 있다가 그 얘기 듣고 거기서 낭독하기로 했다는 소리도 있고..)

생뚱맞게 처음부터 태화관에 모여있다가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모여있다는 소리(거기 모인

사람들이 온화하고 차분한 마음으로 모였을까?)에 그냥 태화관에서 낭독하고 말았다는

얘기도 있다. (심지어 낭독도 "서로 다 아는 얘긴데 그냥 했다고 칩시다" 라고 말했다는

소리도 있다.)

이 말많은 얘기 중 확실한 진실은 분명 그들은 음식점에 모여 낭독했다는 것 이다.

좋다, 음식점에 모여서 낭독한 것 까지는. 그런데 왜 종로경찰서에 전화를 걸어서 일본 순사들에게

우리 여기서 독립선언 했는데 잡아 갈테면 잡아가시오 했단 말인가? 학생 대표들.. 그 행각을 전해

듣고 분노하다 못해 어이가 없다. ('일본인이쓴조선왕조멸망기-가다노 쯔기오'에 의하면 원래

손병희가 발표 중에 비폭력, 무저항에 의한 평화적 시위운동의 대원칙을 군중에게 설명할 예정이

었는데 분위기상 안 먹힐것 같아서 음식점에 모여 낭독하기로 결정하고 민족대표 33인이 곧바로

일본 관헌 에게 잡혀감으로써 학생과 시민에게피해가 없도록 하자는 제안이 이의 없이 통과되어

종로 경찰서에 연락 했다고 적혀있기도 하다.) 학생들.. 민족 대표란 사람들을 믿을 수 없어

하며 자기들끼리 탑공 공원으로가서 쌀푸대 얹어놓고 그 위에서 낭독한다. 3.1 운동의 결과는

알다시피 많은 사람들의 희생이였다.


정리해서, 결코 민족 대표 33인은 파고다 공원에 모인 군중들 앞에 기미 독립 선언문을 낭독한 적이 없다.


※보너스

-3.1운동의 주축은 학생. 그 학생들의 나이는 16~18.

-3.1운동은 태극기 들고 거리에 나와 만세만 외치던 평화시위? 아니다! 농촌으로까지 번지면서

한 맺힌 농민들 손에 태극기 대신 곡괭이와 삽자루 들고 나와 무력시위도 했다!

-3.1운동의 만세시위는 3월 1일을 기점으로 시작 된 것? 아니다! 그 전부터 있어왔던 것-!



아래의 사진은 민족대표 독립선언 기록화, 저자 최대섭, 출처 독립기념관

자료 설명 : 1919년 3월 1일 오후 1시경 서울 태화관에서 거행된 민족대표들의 독립선언식 장면을 그린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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